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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장 통합 51대 총회장 김광현 경북 안동교회 원로목사 15주기 추모예식

기사승인 2021.12.14  21:1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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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연세대·계명대·숭실대학교 이사, 성소병원 초대이사장, 장로회신학대학교 이사장 등 역임

지난 12월 10일 대한예수교장로회 제51대 총회장 및 연세대·계명대·숭실대학교 이사, 성소병원 초대이사장, 장로회신학대학교 이사장 등을 역임한 동은(東隱) 김광현 목사 15주기 추모예식이 경상북도 안동시 서동문로 127(화성동) 안동교회(담임 김승학 목사) 예배당에서 개최됐다.

▲대한예수교장로회 제51대 총회장 및 경북 안동교회 원로목사 故 김광현 목사 15주기 추도예식에서 담임 김승학 목사가 사회를 보고 있다.

이날 추모예식은 안동교회 담임 김승학 목사의 사회로 경안노회장 이재식 목사(송천교회)가 대표기도를 하고 경안노회 공로목사 김광식 목사가 ‘산 소망이 있게 하심’(벧전1:3-7)이란 주제로 설교 말씀을 전했다.

경북 안동교회 임만조 원로장로(전 경안노회장)와 경안노회 공로목사 신종대 목사의 추모사에 이어 故 김광현 목사의 장남 김서년 목사(흑석동 벧엘교회 원로목사)의 인사말이 이어졌다.

▲안동교회 故 김광현 원로목사

故 김광현 목사는 1913년 9월 22일 경북 의성군 봉양면 삼산동에서 김형동 장로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대구 희도보통학교와 대구 계성중학교를 졸업하고 일본 관서지방에서 법학공부를 하던 중에 하나님을 만나 평양숭실전문학교를 거쳐 평양신학교에 입학해 일본에 의해 폐교되기 전까지 다녔다. 1938년 최의숙 씨와 결혼 후 일본 고베중앙신학교로 전학해 신학교를 졸업하고 1941년 4월 부산 초량교회에서 전도사로 시무했다. 1941년 12월 경남노회에서 목사안수를 받고 1942년 초량교회 부목사로 시무했다. 1943년 1월 17일 경북 안동교회 제7대 담임목사로 부임해 37년간 시무했다.

일본은 한국교회의 민족적 정기와 신앙의 진수를 해체 말살하기 위해 신사참배를 강요했다. 이미 1936년 8월 평양숭실전문학교 폐교, 1938년 평양신학교 폐교 등 1938년 2월까지 북장로회학교 8개와 남장로회학교 10개가 일본에 의해 폐교됐다. 일본은 1938년 9월까지 전국 23개 노회 중 17개 노회가 신사참배를 시인하는 결의를 강요했다. 경안노회도 일본의 강요로 1938년 6월 신사참배를 결의했다. 이에 저항한 안동교회는 수많은 시련과 고난을 당했다.

안동교회 김광현 목사는 1945년 8월 8일 자정 일본 경찰에 체포돼 옥고를 치뤘다. 일본은 미군이 한국에 상륙할 것을 대비해 1945년 8월 18일에 한국의 목사와 장로 등 기독교 지도자들을 몰살할 계획으로 김광현 목사를 8월 17일에 대구로 호송하기로 계획했으나, 8월 15일 광복으로 극적으로 석방됐다.

해방 후 김광현 목사는 일본의 탄압으로 폐지된 교회들을 복구하기 위해 교회 복구사절 겸 위문사절로 경북 의성지역을 순회했다. 일본에 체포됐다가 8월 15일에 풀려난 인물들이 중심이 돼 장날에 군민대회를 열고 치안유지회를 조직했다. 안동 주둔미군 밀러 중위(미국 프리스톤 교수) 등과 교회 하층에서 영어강습을 실시하고, 군정장관의 자문역으로 1946년 3월 독립촉성국민회 초대위원장을 맡아 안동사회를 이끌어가는 주역을 담당했다. 1946년 8월 24일 미군정법령 제118호로 창설된 남조선과도입법의원에 당선돼 문교사회분과에서 국립서울대학 설립법, 일본이 만든 공창을 없애는 공창폐지법 등을 제정하는데 큰 역할을 했다.

김 목사는 1948년 5월 9일(일) 총선거일로 결정되자 1948년 3월 28일 안동교회 당회를 열어 주일이 아닌 다른 날로 변경하는 운동을 전개했다. 만약 불응시에는 총기권키로 결의했다. 그 결과 5월 10일(월)로 변경해 유엔 한국임시위원단 감시하에 첫 국회의원 선거가 실시됐다.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해 34일 만에 북한군이 안동까지 쳐들어오자 김 목사는 7월 29일 전 교인을 피신시키고 안동교 폭파를 목격하는 등 생사를 건 후퇴의 쓰라린 경험을 했다. 안동은 전쟁으로 85%가 초토화됐으며, 북한군이 예배당과 목사관을 파손하는 등 극심한 피해를 입었다. 이를 기념해 김 목사는 해마다 7월 29일 특별철야기도회를 개최했다.

김 목사는 해방 후 사회변동에 기독교적인 민주시민이 절실히 요구돼 이 나라의 주인을 길러야 한다는 신념으로 1953년 11월 24일 제54회 경안노회에서 안동에 기독교 고등학교 설립 및 1954년 2월 20일 재단법인 설립인가를 받았다. 또한 일본에 의해 폐원한 성소병원을 해방 후 복원해 1968년 10월 1일 재단법인 설립 초대이사장에 취임해 오늘의 대 성소병원으로 자라나는 기틀을 마련했다.

▲안동교회 故 김광현 원로목사의 부인 故 최의숙 권사는 1980년부터 2005년 90세까지 25년간 한국어, 영어, 일어 3개국어로 4번 신·구약성경을 필사했으며, 90세에 3개국 언어로 실시간 성경 말씀을 모두 암송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05/10/03/2005100370350.html).

한편, 故 김광현 목사의 부인 故 최의숙 권사는 1980년부터 2005년 90세까지 25년간 한국어, 영어, 일어 3개국어로 4번 신·구약성경을 필사했으며, 90세에 3개국 언어로 실시간 성경 말씀을 모두 암송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왼쪽부터 세직선 사무총장 박신호 엘크로(ELCRO) USA CORP 한국지사장, 안동교회 담임 김승학 목사, 상도교회 김서혜 권사, 마산문창교회 김준년 장로

김광현 목사 저서로는 △기독교는 무엇을 믿는가?(사도신경에 대한 해설서 1976) △김광현 설교집(1978) △이 풍랑 인연하여서(회고록, 1993.8.15.) △동은 김광현 목사 논설집(제51대 총회장 기념 논설집, 2000.10.)

유가족으로 장남 김서년 목사(흑석동 벧엘교회 원로목사), 차남 김준년(마산문창교회 장로), 삼남 김무년 목사(안동의료원 원목), 외손자 박준호 박사(엘크로 USA CORP 대표이사) 등이다.

 

 

박신호 기자 jaebol@daum.net

<저작권자 © 연합경제TV 무단전재 및 재배포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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