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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공공정책학회(회장 임채원), '미래 100년 용산 평화타워 건립 시민토론회' 개최

기사승인 2019.08.21  13:5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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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월 21일(수) 오후 4시부터 5시 30분까지 남영동 민주인권기념관

연합경제TV l 대한공공정책학회(회장 임채원)는 8월 21일(수) 오후 4시부터 5시 30분까지 남영동 민주인권기념관에서 '미래 100년 용산 평화타워 건립 시민토론회'를 개최한다고 밝혔다.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100주년의 역사적 성찰과 전망이란 주제로 열리는 토론회는 한인섭(한국형사정책연구원 원장, 서울대 교수) 교수사 사회를 전우용(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

임채원(경희대학교 교수) 교수가 발표를 한다. 토론에는 김종철(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본부장), 권오현(슬로워크 대표)이 각각 한다.

임채원(사진) 회장은 "대한공공정책학회는 '미래 100년 용산 평화타워' 건립을 위해 시민 모금운동을 추진하고 있으니 많은 참여와 관심을 바란다"고 전했다.

□ 일본을 넘어서는 ‘미래 100년 용산평화타워’ 구상

한국의 동아시아 전략이 시험대에 올랐다. 일본의 수출규제는 참의원 선거용이 아니라 동아시아에서 근본적인 구조변화가 시작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일본은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했다. 한국과 자유무역에 기초한 교역이 아닌 무역전쟁을 시작하겠다는 뜻이다. 한국에는 어떤 선택이 남아 있을까.

아일랜드 더블린에는 120m에 달하는 첨탑 하나가 서 있다. '더블린 첨탑(Spire of Dublin)'이다. 이걸 처음 보는 사람은 누구든 의문을 가질 것이다. 왜 아일랜드 사람들은 2003년 이 자리에 원래 있던 넬슨 기념비를 허물고 스테인리스로 된 첨탑을 세웠을까 하는 점이다. 그러나 이 첨탑의 형상이 대신 탑이 세워진 상징과 의미를 알게 되면 고개를 끄떡이게 된다. 첨탑은 아일랜드가 영국의 1인당 국내총생산(GDP)을 넘어선 걸 기념해 만들어졌다. 800년 동안 영국 식민지를 경험한 아일랜드는 국민소득이 식민지 본국을 뛰어넘자 이를 기념하기 위해 국민 성금을 모았고, 새로운 아일랜드의 미래를 상징하는 첨탑을 기념물을 세웠다. 더블린 첨탑의 역사를 알고 나면 일제 강점기의 쓰라린 식민지를 경험했고, 지금은 일본과 경제전쟁을 겪는 한국인들에게도 그 의미가 새삼스러워진다.

□ 아일랜드 '더블린 첨탑'에 담긴 상징과 의미

아일랜드가 영국에 결정적으로 반감을 갖게 된 계기는 19세기 중반의 아일랜드 대기근 때 영국 정부와 영국인 지주가 보여준 냉대와 외면 탓이다. 당시 아일랜드는 '감자 대기근(1845~1852년)'을 시작으로 당시 800만명에 이르던 아일랜드 인구 중 100만명이 죽고 100만명은 미국과 캐나다 등으로 떠나야 했다. 이때 아일랜드 토지는 영국 지주들에 장악된 곳이 많았고 아일랜드인들은 그들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영국은 이를 외면했다. 오히려 이 재앙을 비야냥 되기도 했다. 대기근이 전 유럽에서 관심을 불러일으키자 오스만투르크 등은 원조를 약속했지만 영국 여왕은 이를 거절했다.

아일랜드는 1919년부터 2년간의 독립전쟁을 거쳐 1921년 아일랜드 자유국과 북아일랜드로 분리 독립했다. 그 후로도 아일랜드 공화국군(IRA) 등을 통한 북아일랜드 독립투쟁으로 장기간 지속됐다. 북아일랜드의 벨파스트는 20세기 가장 첨예한 분쟁지역 중 하나였다. 지금까지도 아일랜드는 영국으로부터 독립했지만 식민지 역사와 분리 독립 문제 등으로 영국에 대해 민족적 반감을 여전하다.

식민지 역사의 슬픔과 분노를 간직한 아일랜드였지만 20세기 후반엔 세계 자본주의의 금융자유화 등을 계기로 식민지 본국인 영국의 소득을 넘어서는 부강한 나라가 됐다. 그리고 그 역사적 상징물로써 영국의 영웅인 넬슨 제독을 기리는 넬슨 기념비를 허물고 더블린 첨탑을 세웠다.

한일 갈등이 첨예화되는 지금 한국에도 일본을 넘어서는 미래의 상징물을 준비하는 게 절실한 시점이다. 경제학자들은 2030년 쯤에는 한국 경제가 일본을 추월할 수 있다고 주장하다. 한국 경제가 일본을 넘어설 정확한 시기는 예단할 수 없으나 적어도 광복 100주년이 되는 2045년에 '국가비전2045'가 달성된다면 한국은 경제뿐만 아니라 사회·교육·문화 등에서 일본을 넘어설 수 있지 않을까.

□ '3·1운동',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과 기념물

더구나 2019년은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이다. 그런데 이런 기념비적 사건이 너무 조용하게 지나가고 있다. 다른 나라들은 100주년을 그 나라의 새로운 미래를 위한 계기로 삼았다. 프랑스 에펠탑은 1789년 프랑스 대혁명을 기념하고자 1889년 완공됐다. 미국 자유의 여신상은 미국 독립선언(1776년) 100주년이 지나고 8년 뒤에 세워졌다.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에 있는 구세주 그리스도상도 브라질 독립(1822년) 100주년이 지나고 10년 뒤에 만들어졌다. 한국도 지금부터 국민적 합의를 모아 10년 이내에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물을 세우는 국민운동을 전개할 필요가 있다.

100주년 기념물은 과거 역사를 기념하는 게 아니라 미래 100년의 비전을 담는 것이라야 한다. 또 치유와 통합의 상징적 의미, 변화하는 새로운 시대와 미래도 담아야 한다. 에펠탑은 프랑스 대혁명 이후 1830년 7월 혁명, 1848년의 2월 혁명, 1870년 보불전쟁의 상처를 딛고 만들어졌다. 프랑스 대혁명 이후 프랑스 역사는 100년간 순탄한 발전 대신 혁명과 반동의 갈등, 패전의 아픔으로 얼룩졌다. 그럼에도 100년의 역사는 근대 프랑스를 낳았고 시민 민주주의의 단초를 열였다.

프랑스는 국론 분열과 패전의 기억을 넘어서 국민통합과 미래 프랑스를 상징하는 에펠탑을 세웠다. 산업혁명을 상징하기도 한 이 철골 구조물은 건립 당시엔 프랑스 지식인들의 비난을 받았지만감수해야 했다. 소설가 모파상이 보여준 이 철탑에 대한 반감은 유명하다. 이런 반감을 염두에 두고 만국박람회 20년 뒤에는 이 철탑은 철거하기로 계획되었다. 그러나 지금도 에펠타워는 프랑스를 상징하는 기념물로 건재하다.

자유의 여신상도 미국 건국 100주년을 기념하는 건 물론 독립전쟁과 남북전쟁 이후 미국의 사회통합과 미래에 대한 염원을 담았다. 특히 남북전쟁은 자유와 평등, 행복추구라는 가치를 기반해 만들어진 미국이 두 동강 나서 국론이 분열하고 내전을 치른, 일종의 자기부정 성격의 전쟁이었다. 미국은 건국 100주년을 기념하는 상징물을 만들 때 다시 한번 미국의 건국정신과 앞으로 지향할 새 정신이 무엇인지, 어떤 미래로 나아가야 할 것인지 고민했다. 이 모든 함의를 담고 세계인에게 보여줄 세기의 상징물을 세우고자 했다.

자유의 여신상은 원래 미국이 아니라 이집트 카이로에 세워질 계획이었다. 1869년 지중해와 인도양을 관통하는 수에즈 운하가 착공된 걸 기념하고자 고대 알렉산드리아의 등대처럼 시대를 관통하는 기념물로 자유의 여신상을 기획했다. 하지만 기획이 돌고 돌아 결국 뉴욕에 왔고, 자유의 여신상으로 귀착됐다. 미국은 자유의 여신상을 통해 자유로 상징되는 미국 독립의 가치가 영원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 동아시아 패권경쟁이 벌어진 용산의 상징성

100주년 기념물이 짧게는 100년의 역사, 길게는 그 나라의 정신적 가치를 상징한다면 한국에서 3·1운동과 임시정부 100주년의 의미를 담는 기념물은 어디에 세워야 할까. 그곳은 한국을 넘어 동아시아 100년의 역사를 보여주고 새로운 미래 100년의 가치를 모두 아우르는 공간이자 그런 정신이 내재된 곳이어야 한다. 아울러 무엇보다 일제 강점기의 상실과 분노를 넘어서는, 새로운 한일 관계와 동아시아 평화체제를 염두에 둘 수 있어야만 최적지라고 할 수 있다.

아일랜드 더블린 첨탑 자리에는 원래 영국 전쟁영웅이었던 넬슨 제독의 기념물이 있었다. 하지만 아일랜드 사람들은 넬슨 기념비를 무너뜨리고 그 자리에 아일랜드의 역사와 가치를 담고, 미래 아일랜드를 상징하는 조형물을 완공했다. 더블린 첨탑과 같은 개념으로 한국의 100주년 기념물을 만든다면, 역사적 상징성과 미래 비전을 보여줄 대표적인 곳은 용산 미군기지 부지다.

용산 미군기지 자리의 아픈 역사는 1882년 임오군란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명성황후를 중심으로 한 민씨 정권은 세도정치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외세인 청나라를 서울로 끌어들였다. 부패한 정권이 권력을 유지하는 데 급급해서 주권을 포기한 것이다. 인천에 상륙한 청나라 원세개의 군대는 서울로 들어오자마자 주력인 오장경 부대를 동대문에 주둔시키고 황사림 부대는 용산에 주둔토록 했다. 1894년 청일전쟁이 발발하고 전쟁에서 일본이 승리하자 한반도 패권은 일본에 넘어갔다. 일본은 용산 일대를 한반도정책의 핵심 군사기지로 개발했다. 지금 용산 미군기지 안에는 청나라 군대의 흔적은 사라졌어도 일본군 사령관 관저를 비롯해 100여채의 일본군 유적은 그대로 남아 있는 이유다.

1945년 2차 세계대전이 연합군의 승리로 끝나고 한국이 광복을 맞게 된 후 용산은 반세기 동안 미군기지가 됐다. 그리고 지난해 6월29일 주한미군 사령부가 용산에서 경기도 평택으로 이전함으로써 140여년에 걸친 용산의 외국군 주둔의 역사가 마침내 종식했다.

□ 용산에 100주년 기념물…미래세대 유산으로

국토교통부는 평택으로 옮겨간 용산 미군기지 일대를 생태공원으로 만들겠다는 기본계획을 수립했다. 지난해 말 국토부 용산공원조성추진기획단은 45억원을 투입해 기본설계를 마쳤다. 그리고 올해 한국갈등학회의 연구용역을 통해 미군기지 이전에 따른 갈등요소를 어떻게 할 것인지 점검하는 중이다. 지역의 개발이익에 따른 이해관계 이외에 가장 큰 갈등은 이 미군기지 부지를 어떤 방향으로 개발하고 보존할 것인가 하는 일다. 환경론자 등 일각에선 용산 미군기지를 생태공원으로 남겨두자고 주장한다. 다른 한편에선 동아시아 패권경쟁이 벌어진 용산의 역사를 보전하면서 미래의 유산으로 삼을 수 있는 역사문화 공간으로 거듭나게 하자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사실 지난 140년의 역사에서 용산보다 동아시아 정세변화를 상징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공간을 달리 찾기 어렵다. 용산에서라면 역사의 아픔과 슬픔, 분노를 넘어서 새로운 희망과 번영을 기약할 기념물을 세울 수 있다. 용산에 들어설 기념물은 기존의 패권주의와는 다른 인류의 보편가치인 인권과 민주, 평화, 생태를 기치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는 게 가능하다.

지금 한일 갈등이 첨예화되고 있다. 이 갈등을 먼저 도발한 건 일본의 아베 정권이다. 아베 정권은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북한의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3차례 회담 이후 사실상 허물어진 동아시아 냉전체제에서 일본의 영향력을 확대하려고 기획하고 있다. 아베와 일본이 추구하는 가치는 지난 100년 이상 일본이 취해왔던 군국주의를 재현하는 것 이외엔 그 무엇으로도 설명할 길이 없다. 일본은 미국과 동맹을 강화하고 패권에 기대서 자국의 이익을 최대화하는 데만 골몰하고 있다. 반면 한국은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 지금까지 패권을 추구해 왔던 동아시아에서, 중국과 일본 그리고 미국이 용산 미군기지에서 보여준 것과 다른 방식으로 동아시아의 미래를 제시하는 방법이다.

패권경쟁이 심화되는 시대에 한국의 미래는 동아시아를 넘어 글로벌 공동체의 인권과 민주, 평화, 생태 등 지구적 보편가치를 중심으로 한 새로운 미래를 제시하는 것이다. 용산 '미래 100년 평화타워'는 그 상징적 가치를 구현할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다.

이와 관련 자세한 문의는 권도희 박사(대한공공정책학회,010-5214-1114)로 문의하면 된다.

김태정 기자 yonhap-tv@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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